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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사무총장 '3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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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0,937회 작성일 21-03-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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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매일경제, 3월 10일자

 

지난달 세계무역기구(WTO) 제8대 사무총장에 나이지리아 출신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취임했다. 중국, 유럽연합(EU)의 지지를 받은 그녀와 미국의 지지를 받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겨루어 왔지만, 미국이 입장을 번복하면서 4개월간 대치상태가 일단락됐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결선까지 진출하고 막판까지 버티느라 마음고생을 한 유 본부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히려 탁월한 통상 경험과 전문성을 뒷받침하지 못한 외교력 부재를 탓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WTO 사무총장에 3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994년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이 초대 사무총장에 도전장을 내 결선까지 진출하는 등 선전했지만, 유럽의 견제로 당선에 실패했다. 선거를 치러 본 경험이나 축적된 노하우가 없던 시절이다. 당선된 이탈리아의 레나토 루지에로가 제안해 김 장관은 초대 사무차장직에 만족해야 했다. 2012년 제6대 사무총장 선거에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출마했지만 준결승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WB) 총재 등 굵직한 국제기구에 한국계가 취임하자 견제가 심했다고 한다. 결국 브라질의 호베르투 아제베두가 추대되었고 뒤에 연임까지 성공했다.

우리의 가장 큰 패배 원인은 고정표가 없고 주변국 지지 획득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작년 선거에서 일본이 한국 후보를 반대한 것은 수산물 보조금 분쟁 패배 이후 한국인이 사무총장이 되면 추가 분쟁에서 불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대 이유도 자명하다. WTO 사무총장 밑에 4명의 사무차장이 있는데, 만약 동양계가 사무총장을 맡으면 중국이 7년간 맡아온 사무차장 자리를 유럽이나 아프리카에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나이지리아 후보가 자국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각국은 선거에서 암묵적 거래를 하는데 우리는 지렛대도 별로 없다. WTO 사무총장 선거결과는 한 번도 공개된 바 없지만, 작년 선거에서 164개 회원국 중 유럽, 중국, 일본 등 대략 100여 곳이 나이지리아를 지지했고, 한국을 지지한 곳은 미국, 남아메리카, 아세안 등 60여 곳으로 추정된다. 유럽이 작년 선거에서 나이지리아를 지지했으므로, 차기 사무총장 선거 때 나올 유럽 후보의 경우 아프리카 44개국의 지지는 따 놓은 당상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이지만, WTO 기여 실적이 저조한 것도 문제다. 한 예로 금년 WTO 각료회의(MC12)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에서 개최될 예정이지만 추위 등으로 개최 여건이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 정부는 한 번도 각료회의 유치를 WTO에 제의한 바가 없다. 국내 시민단체와 농민들의 격렬한 데모와 반대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국적도 있는 오콘조이웨알라를 통상 경험 부족을 이유로 거부했던 미국이 왜 갑자기 입장을 번복했을까? 조 바이든 행정부의 도널드 트럼프 정책 지우기 일환으로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오콘조이웨알라는 세계은행에서 로버트 졸릭 전 총재를 수년간 모신 경력이 있다. 졸릭은 부시 행정부에서 무역대표부(USTR) 대표, 국무부 부장관 등을 역임했지만, 바이든과는 별 인연이 없다. 그렇지만 졸릭이 근무했던 골드만삭스가 배출한 인재들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많은 요직을 꿰차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입장 번복 배후에 전직 골드만삭스 사단이 있다는 심증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도 바이든 행정부에 확실한 인맥이 있었다면 작년 WTO 사무총장 선거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의 통상 네트워크 부족을 다시 한번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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